박지성 전 축구선수
출생
음력 1981년 2월 25일
신체
175cm, 72kg
소속사
에투알클래식
가족
배우자 김민지, 아버지 박성종, 어머니 장명자
학력
명지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석사
수상
2011년 미국 프로축구리그 올스타전 MVP
경력
2014.1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앰버서더
전라남도 고흥군 (출신지) / 서울특별시 (출생지)
국적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
신체
175cm / O형
직업
축구선수 (윙어, 미드필더 / 은퇴)
축구행정가
소속
선수
교토 퍼플 상가 (2000~2003)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5~2012)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12~2014)
→ PSV 에인트호번 (2013~2014 / 임대)
기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5~ / 앰버서더)
SBS (2018 / 해설가
국가대표
100경기 13골 (대한민국 / 2000~2011)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축구 행정가.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나, 출생한 지 얼마 안되어 아버지의 고향인 고흥군으로 내려가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녔다] 그리고 수원으로 이사해 수원 산남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나 축구부 해체로 세류초등학교로 전학갔으며, 그 뒤 2000년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서 프로로 데뷔하였다. 이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2014년 PSV 아인트호벤으로 돌아와 1년을 뛰고, 이른 나이에 은퇴하였다. 국가대표로서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주장 등으로 활약했다. 은퇴 이후엔 JS파운데이션 이사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앰버서더로 활동 중이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5인)와 UEFA 올해의 팀 후보(55인, LM 3위)로 선정되었고 그 외엔 발롱도르 후보 50인 선정, FIFA 월드컵 아시아 선수 최다 Man of the Match 등의 커리어를 보유한 선수이다. 히딩크호 23인 엔트리에선 차두리와 더불어 2002 월드컵 당시까지 K리그에 소속된 적이 없는 단 2명뿐인 멤버다. 다만 차두리는 10년 넘게 지난 뒤 FC 서울에 입단하여 2골을 넣었다. 따라서 히딩크호 선수 중 유일하게 K리그 출장경력이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약 10년 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책임진 플레이어였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황금세대 히딩크호의 주역중 한명으로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동점 헤딩골, 프랑스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의 돌파 골을 넣고 월드컵 본선에서는 포르투갈전의 멋진 골과, 스페인전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는 등 주전으로 맹활약했다. 이후 유럽 빅리그로 진출하여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음과 동시에 기량 역시 만개하여 한국 축구 대표팀의 절대적인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연이어 활약했고, 특히 출전한 모든 월드컵에서 골을 성공시켜 3연속 월드컵에서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대표팀 주장으로 캡틴박이라고 불리며,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원정 첫 승, 원정 첫 16강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현역 때는 한국축구의 에이스라는 평을 받을 만큼 훌륭한 커리어를 쌓았다. 네덜란드 명문팀인 PSV 에인트호번에 진출하여 네덜란드 리그 우승과 챔스 4강을 달성하였으며 이후 세계 최정상급 팀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 최초의 한국인 프리미어 리거가 되었다[22]. 또한 맨유에서 프리미어 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챔스 결승전 주전 출전, 맨유 주장으로 경기 출전 등 이게 정말 현실인지 눈을 씻고 보게 만드는 업적과 장면들을 무수히 만들어냈다[23]. 여기에 월드컵 4강, 원정 16강, 월드컵 3연속 출전과 3연속 골이라는 대표팀 커리어까지 합치면 세계적인 선수들과 비교 할 만한 커리어이다.
플레이어 박지성의 진가는 공수에 기여하는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면모와, 뛰어난 축구 지능, 두 개의 심장 같은 수식어가 붙을 정도의 영리한 플레이, 광활한 활동범위, 강철 체력에 있다. 수비형 윙어의 대표격으로 여겨질만큼 공격뿐만 아니라 헌신적인 수비와 인터셉트, 수준급 태클이 특기였다. 넓은 활동 반경으로 공수에 기여하는 강철체력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그 정도로는 그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함께 뛰는 선수가 호날두, 루니 같은 초일류선수들이라 그렇지 박지성의 돌파력, 볼 간수, 패싱 또한 수준급이었다. 맨유에서는 보조로서 팀에 기여하는 데 집중했지만 대표팀에서는 해결사로 직접 골까지 마무리 짓는 팀의 에이스로 변모한다.
현역 시절 그는 말도 안 되는 일부 찌라시를 제외하면 정말 일체의 스캔들이나, 잡음 없이 본업에 충실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같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코리아특급 시절 박찬호, 메이저 대회 우승 커리어를 쌓던 박세리와 함께 한국의 스포츠영웅 대명사로 자리매김하였다. 일명 쓰리박으로 불리던 국민영웅 중 하나였다. 다만 시기적으로 앞의 두 선수는 1990년대를 대표하던 선수들이고 박지성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라서 시대의 차이는 존재한다. 또한 가장 국민들의 응원을 받은 축구선수 중 한 명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박지성의 프로의식, 실력이 뛰어났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높은 축구 지능과 왕성한 활동량이 장점이었으며, 특유의 드리블, 중요한 경기에서 터뜨려주는 순도높은 득점력과 클러치, 수비가담, 그리고 이타적인 스타일의 플레이를 갖춘 선수였다.
2002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 국대와 교토, PSV 시절에서는 거의 붙박이 주전으로 출전했었다. 당시의 플레이 스타일은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움직임이 왕성한 역동적인 윙어였다. 공격 시에는 빠른 스피드와 침투 능력을 이용해 자신에게 볼이 오지 않아도 언제나 공간을 찾아 움직였고 수비 시에는 전방부터 치열한 압박을 전개하고 윙백과의 뛰어난 협력 플레이를 보여줬다. 가장 오랜 시간 몸 담았고 이름을 날렸던 맨유 소속일 때의 위치는 준주전 선수 및 전술적 플레이어. 한국인으로서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팀 내 위치를 본다면 주전이라 할 순 없었다. 팬들도 새벽에 박지성의 경기 출장을 기대하였으나 선발에서 곧잘 빠져 매주 주말 선발 명단을 보며 퍼거슨을 욕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이기도 했다. 겉으로 이를 드러내지는 않았으며 아버지 박성종 씨에게 '그 양반은 늘 그래요' 하고 푸념하는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전술상 필요한 경기,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자주 선발출전했으며 뛰어난 활약을 보인 경기가 많았다. 따라서 입지고 뭐고 없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던 것. 정리하자면 맨유 시절 박지성은 주전이었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틀린 말이나, 그렇다고 벤치만 달구는 만년 후보 선수였다고 하는 것 역시 어폐가 크다.
PSV에서의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그 능력을 퍼거슨에게 인정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록 많지 않은 선발출장률을 기록했어도, 박지성은 매 경기마다 많은 활동량을 보여주었다. 현역 시절 대표적 별명이 산소탱크였는데, 이는 혀를 내두를 정도의 뛰어난 스테미너 덕분이었다. 출전했던 거의 모든 경기에서 10~12km의 활동량을 보여 3순위 안에 드는 게 일과였다. 특히 박지성의 컨디션이 좋았을 때는 골 에어리어를 제외한 경기장 대부분에 발도장을 찍고 다녔으며, 상대했던 선수들을 무기력할 정도로 지워버리기도 했다.
박지성은 내려앉은 약팀의 수비라인을 개인기량으로 뚫을 만한 공격력을 갖추진 못했었으나 특유의 활동량이 있었기 때문에 주도권 싸움이 치열한 강팀과의 경기에서 매우 큰 이점이 될 수 있었다. 골도 유독 빅클럽과의 맞대결에서 많이 나왔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었는데, 당장 월드컵 본선 3대회 연속 골기록은 말할 것도 없으며 월드컵 예선전 당시 테헤란과 서울에서 연이어 이란에게 좌절을 안겨준 동점골, 일본 축구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작렬한 한일전에서의 선취골 등이 있다.
포지션적인 측면으로는 최전방 공격수와 센터백을 제외한 모든 필드 플레이어 포지션을 준수하게 소화할 수 있던 멀티 플레이어였다. 한국 국대에서 뛰는 것을 보면 박지성이 없는 곳이 없었다. 2000 올림픽 팀과 국가대표팀 데뷔 초반에는 중앙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했고 교토에서도 초반에는 중앙에서 활약했으나 히딩크의 국대에서 윙어롤을 맡게 된 이후 쭈욱 윙어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점차 나이가 들고 부상이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활동량이나 스피드가 줄어들어 중앙 미드필더나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공간 이해도와 태클의 정확도 등 수비력이 좋아 에브라 이전에 1선에서 상대팀 윙어를 차단하는 등 윙어로서는 상당히 유니크한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나쁘지 않은 돌파력과 드리블, 전성기 시절의 괜찮은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나 그다지 예리하다고는 할 수 없는 롱패스와 크로스가 윙어로서 단점이다. 하지만 숏패스 능력은 상당히 정확하고 위력적인 편이며 특히 원터치 패스를 통한 공간 창출 능력은 특유의 전술이해도 및 축구지능과 맞물려 맨유의 다른 선수들이 공격을 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재치 있는 침투능력과 수비수 몰이 능력까지 겸비해, 포지션을 정신 없을 정도로 바꿔가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전술을 사용할 경우 물 만난 물고기같은 모습을 보였다. 물론 윙어로서 아쉬운 수준이기는 하나 때때로 좋은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하기도 했다.
선수로서 박지성이 자랑한 가장 큰 장점은 전술하였듯 월등한 스테미너와 높은 전술 이해도, 공간 침투력으로 개인능력이 월드클래스급인 선수가 넘쳐나는 맨유에서 이런 능력을 살려 조연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간단히 말해 원터치 패스를 통해 역습시 공격 루트를 여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공 시에는 상대 수비진의 빈 공간을 꿰뚫어보고 거기 가서 뛰고 있으면 박지성을 신경쓰느라 수비진은 흐트러지고, 그 틈을 이용해 맨유의 공격진들이 쇄도하는 형식. 이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짐에도 오랜 시간 맨유에서 꾸준한 활약을 했으며 점차 그의 가치가 인정받게 되었다.
반면 아쉬웠던 것은 떨어지는 피지컬과 그것을 뒤따르는 개인 능력을 통한 공격력. 활동량과 정신력은 누구보다 강하였으나 피지컬이 다른 선수들보다 떨어진 탓에 윙어로서의 파괴력은 다른 강팀의 윙어들에 비해 한계가 있었다. 05-06 시즌 맨유 이적 직후 곧바로 선발로 기용되며 리그 경기만 34경기를 뛰었지만 공격포인트는 많이 올리지 못했고 호날두나 긱스같은 경쟁자들과 비교해 개인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공격적인 포지션에 있어서 리그 정상급의 기량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상대 포백라인 붕괴, 상대 윙어 압박, 동료들간의 연계 플레이를 가장 잘하는 선수 중 하나였기 때문에 퍼거슨이 부상으로 이탈하지 않는 한 주로 빅매치에 자주 출전시켰다.
또한 무릎 문제로 계속해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는데 어떻게 보면 이게 제일 큰 문제였다. 공격력은 애초에 박지성보다 더 훌륭한 선수들이 있고, 박지성은 그보단 로테이션급 선수로서 여차 싶을 때에 바로 투입시킬 수 있어야 하지만 정작 부상으로 인해 전력에서 이미 아웃된 상황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관해서는 평가가 좋지못하다.
왜냐면 박지성은 말년을 제외하고 4시즌을 부상+A매치 기간을 합산해서 연속적으로 10경기이상 제외된 경기가 4시즌이나 된다. 06-07에는 개막전부터 잘 출전하다가 토트넘전에서 부상당하여 3개월 연속 무릎 부상으로 이탈했고, 그후 31라운드 블랙번전 이후 시즌아웃을 당해서 부상으로 리그경기 명단제외만 20경기 정도 된다. 그 후 07-08 19라운드 선더랜드전에 복귀하였고, 09-10시즌에도 독감->세네갈전 이후 부상으로 5경기 연속결장->회복 후 세르비아 A매치를 치뤘고(리그 8경기 연속, 챔스 2경기 명단제외) 10-11시즌에는 아시안컵 이후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후 96일만에 복귀하였다.(리그 10경기 연속, 챔스 2경기 명단제외)
수비형 윙어
수비 가담 능력이 좋은 편으로 수비형 윙어라는 포지션을 창조해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할 정도이다. 그러나 박지성의 자서전에서 밝혀진 바로는 영국의 언론인 가디언이 수비형 윙어라는 포지션을 박지성이 만들었다고 기사를 잘못 올린 것이 발단이라고. 박지성 이전에도 수비지향적인 윙어들이 있었다. 리버풀의 윙포워드인 디르크 카윗도 수비형 윙어 소리를 듣는 등 국내의 인식과 달리 수비력이 뛰어난 측면 미드필더가을 아주 희귀한 존재는 아니다 현대축구에서 윙어는 단순히 측면공격 뿐 아닌 적의 측면 공격을 차단하는 역할도 겸하는데다 한쪽 측면이 공격을 나가면 다른 한쪽 측면은 포지션을 지키며 2선 라인을 조율하는 편이 안정적이다. 애초에 우리나라에 박지성이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라는 말이 떠돌게 된 이유는 영국의 가디언지에서 박지성을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라고 했다는 기사 때문인데, 실제로는 그런 말 없다. 오역이든 낚시든 퍼온 기자가 잘못 전달한 것. 어쨌든 그의 능력을 폄하할 수는 없고 PSV 시절 04/05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러한 능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전 시즌 챔스 준우승팀이었던 모나코와의 16강 경기에서 에브라를 발라버린다.리옹 전에서도 이영표와 협력으로 좌측을 밀어버린다. 특히 4강인 AC 밀란전에서 혼자서 한쪽 측면을 휘젓다시피 하면서 1인 압박축구를 펼친 장면은 유명하다. 2009년 5월 6일 아스날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선 아스날의 측면 공격수 시오 월콧을 경기장에서 지워버렸는데 그 날 월콧은 평점 4점을 받았다.
그리고 측면 미드필더로 출전하진 않았지만 09/10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는 AC 밀란의 플레이 메이커 안드레아 피를로를 글자 그대로 지워버렸다.로의 대활약에 당시 피를로를 지워버렸던 박지성의 평가도 올라갔다. 사실 적 팀의 빌드업을 담당하는 미드필더에게 마킹을 붙이거나 하드한 압박을 넣어 방해하는 것은 수도 없이 나온 전술이지만, 이 역할은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중앙 미드필더나 그 목적만을 위해 미드필더 자리에 기용된 수비수가[51]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박지성은 측면 미드필더가 이 역할을 위해 중앙에 위치됐으니 상당히 특이하다. 박지성이 다른 측면 미드필더들과는 다른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수비 시에도 압박하지만 공격할 때도 상대 풀백에게 끊임없는 판단을 강요한다. 박지성의 또 하나의 강점으로 돌파, 패스, 쇄도, 슛의 선택과 판단력이 좋다. 매번 그 상황에 적절한 판단을 하는 편이고 무엇보다 그 판단이 빠르다. 즉,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공을 잡고 오래 끌지 않는다. 패스를 받기 전에 이미 빈공간을 향해서 뛰고 있고 그 공을 받기 전에 이미 다음 행동을 판단해서 받자마자 바로 시행한다. 빈공간 쇄도->받자마자 1:2패스->패스하자 마자 빈공간 쇄도->또 패스 or 돌파 이런식으로 후방에서 안정적으로 계속 볼만 보급이 된다면 상대 윙백의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판단을 강요하고 계속 움직이게 만들어 지치게 하는 식으로 풀백을 괴롭힌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수비를 끌고 다니며 다른 선수들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덤.
하지만 박지성의 실력을 냉정하게 봐야한다는 시각에서는, 빠른 판단으로 패스하는 것 외에 돌파, 쇄도 시도가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박지성의 경기를 보면 공격 상황에서 패스를 받았을 때 10중에 9는 바로 패스한다. 문제는 본인이 충분히 돌파해서 슛까지 시도해도 되는 상황인데도 이렇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팀 동료한테 패스를 하고 본인이 쇄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박지성은 혼자 뛰어들어가고 동료한테 패스를 못 받는 경우가 매우 자주 연출된다. 이것을 맨유 선수들이 실력이 안 좋다거나 박지성에게 일부러 패스하지 않는 거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이런 이유는 박지성이 뛰어들어가는 공간이 수비수에게 차단당하기 쉬운 곳이라는데 있다고 한다. 즉 박지성은 수비수를 자기가 몰고 그 틈에 팀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하는 의도인데, 상대 수비수들은 그게 딱히 위협적이지도 않고 별로 무의미한 쇄도여서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고, 그렇다고 같은 편이 패스를 주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위치라는 얘기.
이들은 박지성이 전체적으로 욕먹지 않을 소극적 플레이를 하며, 공격 장면에서도 이처럼 무의미한 장면들을 많이 연출한다고 얘기한다. 또 호루박 움짤로 유명하지만, 패스 능력과 전진 능력이 좋지는 않기 때문에 역습상황에서 스프린트하는 동료들을 보고도 백패스를 하는 등 역습 상황을 끊어먹는 경우도 꽤 있었다.
맨유 초반에는 이런 스타일이 아닌 공격적인 윙어였으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플레이스타일을 가지게 된 것은 2007년에 당한 무릎 인대 부상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년여에 가까운 아주 커다란 부상이었으며, 그로 인해서 PSV ~ 맨유 초창기 시절의 활발하던 스피드와 돌파력이 저하되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이러한 신체적 능력의 저하를 커버하기 위해서 선택한 박지성 나름대로의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국가대표에서는 움직임이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같지만 공격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2000년대 대한민국 대표팀의 크랙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래서 박지성이 전성기였을 당시에는 이를 두고 넷상에서 축빠들의 많은 토론이 있었다. 다만 박지성의 자서전에 따르면 맨유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공격적 능력이 더 뛰어나고 자기가 공격을 하는 것보다 그들이 공격하는 것이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 조연의 역할을 맡는 것이라고 했으며 국가대표에서는 자기가 주연이 되어야 하니 그렇게 플레이 스타일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비슷한 유형의 선수를 꼽자면 잉글랜드/리버풀의 제임스 밀너정도. 돌파능력과 득점력을 더 높히고 활동량과 수비능력을 조금 줄이면 베르나르두 실바와도 흡사한 면이 있다.
2010년 이후 축구 전술에서 각광받는 게겐프레싱, 두줄수비 등 공격형 윙어라도 수비가담을 안하면 욕먹는 전술들이 트렌드화 되고 또한 2010년대 중반 이후 3백 전술이 큰 유행을 하게 되면서 왕성한 활동량과 수비 공격에 다재다능한 윙백에 대한 주목도가 올라가자 많은 축구팬들은 박지성을 다시금 한번 떠올렸다.
현지에서도 그랬던 것인지 박지성과 퍼거슨의 은퇴 후, 여러 호사가, 전문가들이 박지성 같은 좋은 수비가담과 높은 전술적 이해도를 가진 선수가 지금의 맨유에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뒤로 박지성의 후계자로써 비슷한 유형으로 지목됬던 선수가 제시 린가드이고, 커리어하이 시즌 공격포인트를 보면 박지성의 상위호환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정리하자면 맨유 시절 박지성은 수비 가담이 좋아 메시 피를로 등의 스타플레이어를 봉쇄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으나 공격적인 능력은 매우 뒤떨어져 시즌당 골 수가 3~5골 정도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리그 탑급의 공격력을 가지고 측면을 파괴하는 공격적인 윙 플레이어는 아니었기 때문에 공격적인 측면에서 다소 아쉬웠던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수라고 볼 수 있다.
높은 전술이해도
전술이해도가 뛰어나 감독의 주문에 군말없이 잘 적응하기로 유명하다. 교토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PSV에서는 4-3-3의 스리톱, 맨유에서는 4-4-2의 측면 미드필더, 국대에서는 중앙, 측면에서 평균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는것만 봐도 그의 전술이해도와 재능은 우수하다. 다양한 포지션에서나 필요한 플레이를 해줬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소속팀 감독들이 박지성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며 전술적으로 뛰어난 감독들은 장기말이 되기를 마다 않는 박지성을 싫어할 수가 없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을 국대 소집하자마자 결점이 없다고 평했고, 퍼거슨은 초반부터 기세를 잡아야 하는 빅매치에서 박지성을 꾸준히 기용하면서 재미를 봤다. 단 QPR 시절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활약이 없었다
박지성의 출장 횟수가 적지만 강팀과의 경기에는 많이 나온 이유가 이것이다. 강팀들끼리 붙을 때는 약팀이랑 할 때와는 다르게 개인 능력으로 찍어누르는 플레이를 할 수 없고 더 강한 팀과 할 때는 더더욱 그럴 수 없다. 결국 전술적이고 팀플레이로서 평가되는 요인들이 경기에 큰 영향을 끼치게 돼있으므로, 개인 능력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팀이 요구하는 전술적인 플레이를 잘하는 박지성을 출전시키는 것이다. 박지성은 대부분 이런 팀의 의도에 잘 부응하며 좋은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언제나 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박지성이 이런 역할을 통해 승리에 크게 기여한 경기들은 대표적으로 2008년 UCL 4강 바르셀로나전, 2010년 UCL 16강 AC밀란전, 2011년 UCL 8강 첼시전, 10-11 EPL 리그 후반기 첼시전 등이 있다. 반면에 이런 역할로 나왔으나 잘하지 못한 경기로는 2009년 UCL 결승전, 2011년 UCL 결승전[56], 11-12 EPL 리그 후반기 맨시티전등이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
2014년 9월 3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페이지에 박지성과 라이언 긱스에 관련된 흥분되는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이니 채널을 고정해 달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이에 팬들은 박지성이 엠버서더로 임명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고 기대대로였다.
맨유 앰버서더란 전 세계를 돌며 맨유를 홍보해주는, 즉 일종의 홍보대사같은 직책으로, 구단이 공식으로 인정하는 선수를 의미한다. 그간의 맨유 앰버서더에는 보비 찰튼을 비롯해 데니스 로, 브라이언 롭슨, 앤드루 콜, 알렉스 퍼거슨, 게리 네빌, 피터 슈마이켈이 있었다. 2014년 10월 9일 SBS 풋볼매거진골 방송을 통해 그가 8번째 맨유 앰버서더라고 밝혔다. 맨유 앰버서더로 임명될 경우, 비유럽 국가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맨유 앰버서더가 되는 것이다.
맨유에서 400경기 이상 출전하거나 100골 이상을 기록해야 맨유의 앰버서더가 될 자격이 주어진다는 정책에 따라서 박지성은 자격이 될 수 없지만, 맨유에 마케팅 수단이 아닌 미드필드 전력 보충을 위해 영입된 아시아인 선수로 맹활약하여 커다란 팀 공헌도에 기여한 것이 위촉의 이유라고 한다.
그리하여 앰버서더가 되기 위한 '400경기 100골'이라는 조건은 잘못 해석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이 기준에 대한 기사나 게시물에서 근거로 드는 것은 맨유 공식 웹사이트에 나와있는 레전드 항목인데, 이것은 맨유 공홈 관리자가 웹사이트를 꾸밀 때 이 항목에 게시할 만한 대표적인 레전드를 추려낸 자의적 혹은 여태까지 맨유 레전드로 선정된 선수들의 공통점을 기준으로 작성한 가능성이 높고, 레전드와 비(非)레전드를 나누는 공식적인 기준이 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레전드라는 것은 메이저리그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처럼 어떤 기준을 통해 선발되는 것이 아니라 인상적인 활약으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선수들에 대한 일반적인 경칭일 뿐인데, '레전드 기준'이라는 게 있다는 섣부른 확대해석 때문에 박지성이 레전드냐 아니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확실한 것은 박지성이 기록적으로서 맨유의 레전드가 맞건 아니건 맨유 구단과 팬들이 박지성을 7년간 맨유의 일원으로서 이루어낸 업적에 대한 공헌을 인정함과 동시에 팬들과 구단관계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아온 선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10월 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박지성을 맨유의 앰버서더로 임명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다년. 다년간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맨유 공식행사에 참여하게 되며, 연봉 개념으로 활동비 1억 5천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로써 박지성은 맨유 역사상 8번째이자 비유럽권 및 아시아인 최초의 맨유 앰버서더가 되었다.
행정가 경력
2016년 3월 FIFA의 마스터 코스에 합격, 본격적인 행정가 수업을 받을 계획이다. 본인은 지도자로 나설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2017년 7월 24일 국제축구평의회(IFAB)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출처
2016년 9월 22일 영국 드몽포르대 스포츠 매니지먼트 전공 석사 과정을 시작한다.
이는 영국 공영방송 BBC에도 영국 레스터에 위치한 드몽포르대에서 국제 스포츠 매니지먼트와 법률 및 인문학 석사 과정을 공부할 예정이라고 보도되었다.
박지성은 이에 대해 "한 동료가 (이곳에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며 "축구장 안팎에서 지식을 향상시키고 싶었다. 이후엔 어쩌면 한국 축구리그를 위해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드몽포르대 홈페이지에 말을 남겼다.
그리고 학교 축구 경기에 출장했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하지만 팀은 7-1로 졌다고 한다.
축구협회가 박지성에게 유스전략본부장의 자리를 맡긴다고 발표했다. 축협의 인적쇄신을 위한 카드로서 홍명보 전무이사, 이임생 기술위원장 등과 함께 발탁되었다 다만 이 축협의 깜짝인사가 애초에 근본적으로 스타 마케팅이자 2002 추억보정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 까방권을 가지고 있는 박지성과는 별개로 구조개편으로 이미지 쇄신을 꾀했던 축협의 이미지는 좋아지긴커녕 바닥을 모르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대한축구협회의 임원이 된 박지성마저도 축협을 대차게 까고 있다. 그 후 유스전략본부장에서 1년만에 사임하였다. 다만, 사임하는 이유는 축협과의 갈등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행정가 공부를 지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객원 해설위원으로서 잠깐이나마 해설 데뷔를 했었다. 다만 처음이다 보니 그다지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었다.
이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SBS의 정식 해설위원으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해설 데뷔를 하게 된다. 개막전인 러시아와 사우디와의 경기에서 처음 선보인 해설자 박지성은 초반엔 좋지 않았지만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엔 "목소리가 너무 하이톤이다", "해설에서 기자회견 때에 말하는 것과 똑같이 뭔가 건성건성으로 말하는 간신같은 말투가 답답하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너무 무난하다" 라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발성에 대한 지적이 대다수. 박지성에 대한 팬심으로 SBS를 틀었으나 목소리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다른 채널로 돌렸다는 말이 꽤 많이 보였다. 박지성 본인도 아직 마이크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성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있다.
이후 피드백을 받으면서 다음 경기에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려를 불식시켰다. 물론 배성재의 도움도 있었고 처음에 지나치게 너무 떠버린 목소리가 많이 안정적이고 단단한 목소리로 개선되었다. 특히 축구선수로서 정점의 커리어에 있던 사람인지라 중간 중간 푸는 썰들, 파울 시비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는다른 해설진들과 다르게 단호하게 "맞다, 아니다." 찝어주는 모습이 신선했고, 두 방송사 해설이 다소 언행이 차분하지 못했던 면과 비교되어 선수들이 부진했어도 '아쉽다', '한국축구 전체 책임이다' 정도에서 끝내는 정도로 참았다. 2인 해설의 한계상 장지현과 같은 축잘알 해설이 붙어서 시너지를 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텐데 하는 의견들도 많지만 다른 경기들을 해설해야하는 장지현의 스케줄상 아무래도 어렵다. 결과적으로 첫해설 치고는 잘했다는 평이다. "어떤"이라는 단어를 중간중간에 너무 많이 쓴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다음에 해설할 때는 모니터에 포스트잇으로 "어떤"을 써놓고 가위표를 쳐놔서 스스로 피드백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어록 항목에 나와있는 것과 같이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경기: 멕시코 vs 독일에서 독일의 이뭐병 스러운 경기능력을 보고나서는 아무 망설임 없이 비벼볼 만합니다라는 발언을 해서 사람들이 '제아무리 박지성이라지만 더위 먹고 실성한 게 아닌가 라는 평가마저 받았는데... 결국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경기: 대한민국 vs 독일에서 대한민국이 독일을 정말로 싹싹 비벼버리는 사태가 벌어져 버렸고 그 결과 박지성의 통찰력에 사람들이 감탄했다.
대한민국의 조별리그 3경기가 끝난뒤 육아 휴가 차원에서 영국 런던의 자택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후에 4강전부터는 다시 러시아로 와서 중계를 마무리 지었으며 2018년 8월달에 진행될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해설은 안 한다고 밝혔다.
대회기록
교토 퍼플 상가 (2000~2003)
J2리그: 2001
천황배: 2002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에레디비시: 2002-03, 2004-05
KNVB 베이커: 2004-05
요한 크루이프 스할: 2002-0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2012)
프리미어 리그: 2006-07, 2007-08, 2008-09, 2010-11
풋볼 리그 컵: 2005-06, 2008-09, 2009-10
FA 커뮤니티 실드: 2007, 2008, 2010, 2011
UEFA 챔피언스리그: 2007-08
FIFA 클럽 월드컵: 2008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월드컵 4위: 2002
AFC 아시안컵 3위: 2000, 2011
개인수상
발롱도르 후보: 2005 (Non-voted players)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 2005[66]
UEFA 올해의 팀 후보: 2005 (LM 3위)[67]
AFC 아시안컵 우수 선수: 2011[68]
MLS 올스타전 MVP: 2011
K리그 올스타전 MVP: 201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달의 선수: 2009년 3월, 2010년 11월ㆍ12월
KFA 올해의 선수: 2010[69]
KFA 올해의 골: 2002, 2010[70]
AFC 아시아 월드컵 역대 베스트 XI: 2020
AFC 아시아 월드컵 영웅: 2020 (1위)
우리의 영원한 캡틴박
'스포츠 > 운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성범 (0) | 2020.12.03 |
---|---|
이강인 이적요청 (0) | 2020.12.02 |
이강인 과연 이적할것인가? 이적하면 어느팀으로.. (0) | 2020.11.21 |
댓글